파스칼과 몽테뉴 사이에서 {논어}를 읽다

문우보인 | 2014.11.29 00:16 | 조회 1076

 

 

파스칼과 몽테뉴 사이에서 {논어}를 읽다*

                                                                                                                                                               

 

고교 1년, 파스칼의 『팡세』를 만났다. 미션 스쿨에 다녔고, 선교부장을 맡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만 목이 말랐다. 어떤 목마름이었을까. 그 목마름이 파스칼과 만나게 했다. 내가 파스칼을 만난 것이 아니라 파스칼이 나를 찾아온 듯했다. 『팡세』를 읽고 또 읽었다. 성서에 심취해서 신약과 구약을 다 읽고 신약은 적어도 서른 번쯤 통독했던 것 같다. 성서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친구들이 시험 공부할 때도 성서를 읽었다. 그래서일까. 과학의 천재 파스칼이 신 앞에 '눈물,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신앙의 고백에 감동했다. 『팡세』는 그렇게 내게 구원의 서書로 다가왔다.

 

파스칼은 생각하는 갈대로서 인간의 위대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회심이후 인간의 허영심과 신 없는 인간의 비참을 발견했다. "두 종류의 인간만이 있다. 하나는 자기를 죄인으로 믿는 의인들, 다른 하나는 자기를 의인으로 믿는 죄인들." 그리고 "자신의 비참을 모르고 신을 아는 것은 오만을 낳는다. 신을 모르고 자신의 비참을 아는 것은 절망을 낳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 중간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신과 우리의 비참을 동시에 만나기 때문이다."와 같은 구절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파스칼이 없는 고교시절을 상상할 수 있을까. 어둡고 긴 10대의 마지막 터널을 지나는 동안 파스칼은 합리적 이성이 도달할 수 없는 신앙의 신비를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스무살 고개, 안팎으로 부딪쳐온 사건들에 흔들렸다. 신앙과 일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자연히 『팡세』로부터 멀어져갔다. 세계는 혼돈스러웠고 불가해한 것으로 가득 차 보였다. 남독과 난독,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갔다. 학과 공부보다 혼자만의 독서로 날들이 채워졌다. 그렇게 이십대가 지났고, 서른 즈음의 여러 해 동안 공부를 업으로 삼아 학위과정을 마쳤다. 마흔 무렵, 왜 그랬을까. 고교시절 부분만 접했던 몽테뉴의 『수상록』을 책장에서 꺼내어 읽어갔다. 신앙의 회의와 모색으로 한동안 『팡세』를 멀리했던 나는 파스칼이 비판했던 몽테뉴의 회의주의와 그의 『수상록』에 실린 에세이들에 매료되었다.

 

몽테뉴는 훈계나 설교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화상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외모, 성격, 기질, 대인관계, 취미 등등, 그리고 세상에 대한 낙천적이라고 할 만한 태도, 독단을 비판하고, 무엇이든 절대화하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았다. 읽어갈수록 몽테뉴의 글에서 쾌락으로서의 독서도 체험했다. 금욕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욕망을 인정하는 삶의 건강성을 되찾았고, 신앙을 더 넓은 차원에서 받아들이게 되었다. 몽테뉴는 내게 종교적 신앙의 확신과 독단이 가져올 수 있는 독을 해소시켜주었다. 독자에게 그저 자신의 맨얼굴을 보여줄 뿐 자신의 생각을 강제하거나 충고하지 않았다.

 

적지 않은 시간, 파스칼과 몽테뉴 사이를 오가면서 내 안에는 『논어』의 세계가 또한 깊이 들어와 있었다. ({논어}와의 만남은 늘 새롭게 반복되었지만, 초등학교 때 읽은 {논어}는 {어린왕자}처럼 사라지지 않는 어떤 울림을 안겨주었다.) 그 세계에는 『팡세』와 『수상록』의 세계가 공존하고 있는 듯했다. 그 둘을 아우르는 듯한 『논어』는 하늘에 대한 믿음과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던 시기에 형성되었다. 『논어』는 하늘에 대한 외경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사람이 자신의 결단으로 삶의 길을 걸어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무엇보다 『논어』의 문답은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담담한 듯 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평범해 보이지만 쉽게 허물어질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있었다. 『논어』는 인생에 어디 손쉬운 대답이 있겠는가, 자신의 짐을 지고 길을 걸어가되, 사람들과 함께 가야한다는 것을, 온화한 듯하나 단호하게 일러주었다.

 

『논어』는 읽을수록 맛이 났다. 길이 멀리 있지 않고 일상 속에 있구나, 공구의 마음과 일상이 손에 잡힐 듯 했고, 그의 육성이 가슴을 쳤다. 공자를 선생으로만 아니라 인간 공구로서 만났다고 하면 과언일까. 공구는 내게 '유교'라는 틀에 갇힌 공자가 아니라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며 사람다움과 평화를 모색한 지성으로 다가왔다. 분석하고 연구하기에 앞서 삶과 앎의 목마름을 채워주었던 『논어』. 주희, 정약용, 유보남, 정수덕, 요시카와 고지로 등 여러 학자의 주석과 해설을 통해 만난 『논어』의 세계는 또 얼마나 넓고 깊었던가! 『논어』는 내게 사람이 가슴에 무엇을 품고 살아야 하는가 알게 해주었다. 십대와 이십대에 『논어』를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읽을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이제『논어』와의 또 다른 만남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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