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병주의 도스토예프스키론

문우보인 | 2014.03.12 23:10 | 조회 922

 

....사실 우리의 내면 세계를 응시하고 있으면 별의별 동물을 발견할 수도 있다. 사자도 있고 용이 있는가 하면 돼지도 있고 개도 있고 여우도 있고 뱀도 있고 비둘기도 있다. 이러한 동물들과 아울러 심리(心理)의 자락엔 갖가지 관념과 욕망과 야심이 제각기 집을 지어 놓고 있다. 평온할 땐 무풍(無風)의 산야처럼 조용하지만 일단 거센 바람이 불면 도끼를 휘둘러 대립되는 관념과 욕망을 죽이려는 참극이 우리 내부에서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성자(聖者)의 심중엔들 한 마리쯤의 독사가 없을 순 없다. 자기 속의 독사를 죽이고서 성자가 되는 것이다. 원래 독사 한 마리 없는 청결한 마음의 소유자가 성자가 되었대서 그건 대단한 일이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기가 마음 속에 쳐든 도끼의 의미를 탐구한 끝에 라스코리니코프로 하여금 센나야의 광장에 무릎을 꿇게 하고 오물투성이가 되어 있는 그 흙에 입을 맞추게 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죄 짓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뜻으로서의 '죄'와 그렇다고 해서 죄를 모면할 수는 없다는 뜻의 '벌'이란 인식이 어떻게 가능했었느냐 말이다. '죄와 벌'이라고 할 때의 죄는 또한 반역을 기도하지 않고는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할 도리가 없는 실존에 붙여진 이름이며, 벌이란 그러나 반역한 채로는 생을 지탱할 수 없는 실존에 붙여진 이름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궁핍, 특히 {죄와 벌}을 쓴 시기의 전후에 있어서의 그의 궁핍상을 읽으면 눈물이 난다. 어떻게 그러한 고통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이다. 1864년에서 1865년은 그에게 있어선 최악의 시기라고 할 수가 있다. 1864년 6월 그의 형 미하일이 죽었다. 형의 가족은 무일푼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겐 2만 5천 루우블리의 부채가 남았다. 형의 가족도 부양해야 하고, 빚도 갚아야 하고, 잡지 발행도 해야 했다. 그 무렵의 상황이 어떠했던가는 시베리아 이래의 친구인 우랑게리 남작에게 보낸 편지로써 그 일단을 짐작할 수가 있다.

 

" 뭣이건 나 혼자서 해야만 했다. 교정, 원고의 의뢰, 검세관과의 교섭, 논문의 정정, 금책, 아침6시부터 일을 하는데 다섯 시간 밖엔 자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내 이름이 잡지에 없으니 페테르부르그에서조차 잡지를 경영하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형편이다. 독자는 1천 3백으로 줄어들었다. 아아, 나는 몇 해라도 좋으니 감옥엘 가겠다. 부채를 갚고 자유로운 몸이 될 수만 있다면 기꺼이 들어갈 참이다...."

 

 - 이병주,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허망과 진실-나의 문학적 편력} (서울: 기린원, 1979)에서 / 이 책은 {이병주의 동서양고전탐사 1}(서울:생각의나무,2002)로 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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