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예에서 동양인의 마음을 읽다: 문영란 지음, {화예미학}을 읽고

문우보인 | 2014.03.12 20:34 | 조회 1213

 

화예에서 동양인의 마음을 읽다

 

- 문영란 지음, {화예미학}(서울:문사철,2014)을 읽고

 

 

대학 2학년 때, 아침 종교학개론 수업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담당 교수님이 강의시간이 15분이 지났는데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평소 늦으신 적이 없던 분이 무슨 일일까...그런데 곧 강의실 문이 열리고 교수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여러분 늦어서 미안합니다.” 교수님은 미안해 하면서도 만면에 흐뭇한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사연을 궁금해 하는 학생들 눈빛을 보셨는지 이렇게 지각의 변을 전했습니다. “오늘, 학교 문을 들어서는데, 화단에 핀 꽃을 보았어요. 그 꽃이 오늘 유난히 아름답고 신비롭게 다가오더군요. 그만 넋을 놓고 바라보다 늦고 말았습니다.”

 

{화예미학}이란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학부시절 경험이 떠올라 적어보았습니다. 스무해 가까운 시간이 지났는데도 왜 그날이 오롯이 떠오르는 걸까, 잘은 모르나, 그 교수님의 진솔한 마음, 꽃을 바라보고 취해 강의시간도 잊었던 그 맑은 마음에 잔잔한 감동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마흔 중반에도 감성이 살아 있던 그 교수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화예미학}을 읽는 동안, 문득 그 교수님의 마음과 꽃 사이의 교감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묻게 되었고, 새삼 ‘화예華藝’가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화예華藝’란 무엇일까요? 왜 저자는 꽃예술, 꽃꽂이라는 개념을 쓰지 않고 ‘화예’란 개념을 쓰는 걸까요? 저자에 따르면 화예란 “꽃과 식물을 매개로 하여 창작자의 심성心性을 담아내는 심상心象예술”이고 “객관적 사실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형사形似적 측면보다는 창작자의 의意를 중시하는 신사神似의 의상意象예술”입니다. 요컨대 저자는 화예란 단순히 서양미학의 특징인 자연의 모방, 재현을 따르는 길이 아니라 창작을 하는 이의 마음과 뜻을 드러내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주관, 욕망)’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사이에 쉼없이 흐르는 도道와 신神을 드러내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손으로 잡거나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힘이자 생명력이라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널리 알려진대로 동양에서는 꽃을 기르고 키우는 전통이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에 소개된 명청시대 문인들의 소품문이나 저자가 풍부하게 예시한 고전들, 조선시대 강희안의 {양화소록養花小錄}을 보면 그 풍경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그러한 양화養花가 양성養性, 즉 심성을 기르고 키우는 문인文人 전통과 관련되어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풍토에서 꽃이라는 자연물은 단순히 객관적 대상이 아니라 나와의 교감, 감응이 이루어지는 관계 속에 놓여지고, 죽은 사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의生意를 간직한 존재로 다가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사의적 화예寫意的 華藝’라는 개념을 통해 동양화예의 특징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럼 사의적 화예란 무엇일까요? 사의란 동양예술의 정신성, 예술정신[意]의 표현[寫]을 말해줍니다. 이는 단순히 정신/육체, 정신/물질이라는 이분법을 통해 동서예술의 차이를 도드라지게 하려는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왜냐하면 저자는 무엇보다 동양의 예술정신이란 대상에 대한 모방과 재현[形似]이 중심이 아니라, 작품 속에 담긴 예술정신[神似]을 중시하는 전통이 있음을 일깨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서양의 플라워디자인이 지닌 특징과 동양의 화예의 차이가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서양의 플라워디자인은, 서양이라는 수식어를 빼도 이미 우리가 지나는 거리의 꽃집들을 보면 대부분 플라워디자인으로 전시가 되고 있으니 쉽게 확인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서양플라워디자인의 기하학적 특징에서는 꽃의 생의가 감응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서구 추수의 풍토를 비판합니다. 왜냐하면 서양플라워디자인이 “조화와 질서를 기초로 비례, 기하학적 특성인 형태의 정태성을 중시하며, 또 객관적 사실주의 기법을 중시, 외형적 아름다움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면 이와 달리 “동양화예는 자연과 인간의 합일이라는 천인합일과 정경합일의 사유를 통해서 형성된 사상이나 감정, 정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사의적 화예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 이아관물以我觀物이 아니라 이물관물以物觀物, 유아지경有我之境이 아닌 무아지경無我之境이란 개념을 제시합니다. 이 개념들은 동양미학에 자주 등장하는 전문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그 의미를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예술작품을 볼 때도 자신의 선입견이나 개인적인 취향을 갖고 바라보면 정작 그 작품의 목소리, 하고자 하는 말에 귀기울이기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물론 나라는 주체를 완전히 배제한 채 작품감상이 이루어지기는 어렵겠지만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주관만을 덧씌운다면 작품과의 참된 만남과 교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자는 이아관물은 나를 통해 사물을 보므로 사물의 본성을 볼 수가 없으며 따라서 나의 주관에 치우치기 쉽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물관물, 즉 사물로 사물을 보며, 사물의 내재적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사물의 본성을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그것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낯설게 바라보기‘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창작주체의 마음(감정)과 사물이 서로 만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이는 자신의 주관을 내려놓고 내적인 수양을 통해 가능하다고 합니다.

 

저는 화예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그러나 미력이나 용기를 내어 글을 써본 것은 평소 동양의 예술정신이란 뭘까, 그것을 어떻게 오늘의 언어로 말할 수 있을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동양의 예술정신이 화예라는 분야에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을까, 또 미학으로서 어떻게 연구될 수 있을까에 자연히 마음이 가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책이 꽃과 화예를 사랑하고, 거기에 담긴 동양예술정신의 깊이를 맛보길 원하는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이 책에 담긴 알짬을 좀 더 풀어 누구나 화예와 그 예술정신을 음미할 수 있는 책도 써주시길 부탁드려봅니다.

 

 

 

* 글쓴이: 임종수-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 학술원, 감리교신학대학, 경희사이버대학, 대안연구공동체 등에서 동아시아철학과 한문을 강의중이며 도서출판 문사철 기획위원으로 있다. 함께 쓴 책으로 {종교속의 철학,철학속의 종교}(서울:문사철,201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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