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나의 죽음 -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서

문우보인 | 2014.03.11 23:56 | 조회 712

아버지가 숨을 거두시던 날 나는 두 아우와 함께 수의를 입히기 앞서 향 삶은 물로 시신을 깨끗이 정화시켰다. 영혼을 벗어버린 시신은 뻣뻣하게 굳어 한 토막의 마른 등결처럼 이미 물질로 돌아가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바싹 말라 뼈가래는 앙상하고 피부는 마른 명태 껍질처럼 광택을 잃고 골절상을 입었던 아랫도리는 몹시 뒤틀려 있었다. 그 서러운 몸을 향물로 정성껏 닦던 나는 마지막으로 두 가랑이 사이로 손이 갔을 때 그만 격정에 못 이겨 후둑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난생처음 보는 아버지의 성기, 그 부위를 닦을 때의 감촉과 긴장감은 3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한 느낌으로 남아 있다.나의 존재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너무 자명하여 오히려 추상적으로 느껴졌던그것이 그 순간 엄청난 무게의 실감으로 나를 압도했던 것이다.존재의 한 점 씨앗 나라는 존재의 우연을 발생시킨 그곳 그러나 그 생명의 원천은 이제 폐허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폐허가 아버지의 죽음,그의 영원한 부재를 예리한 통증으로 나에게 확인시켜 주었다.그리고 그 죽음은 조만간에 찾아올 내 죽음의 실체도 함께 느끼게 했다.

그동안 허다한 죽음들을 보고 들어왔지만 그때처럼 죽음의 실체를 생생하게 느껴본 적은 없었다. 막연한 추상으로 먼 곳에 머뭇거리던 죽음이 어느날 급습하여 아버지의 몸을 관통해서 나와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의 그 예리한 통증은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 그러므로 부친의 영전에서 맏상제로서 내가흘린 눈물 속에는 필경 자신의 죽음을 미리 보어버린 자의 두려움과 슬픔도 함께 있었을 것이다.이제 아버지가 가셨으니 다음은 내 차례로구나,하는 각성이 나의 폐부를 아프게 찔렀던 것이다. 탄생은 우연일지라도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연이라는 것.

그러나 죽음이 곧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죽음이 인간 개체를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한다.죽어서도 내 마음속에 뚜렷이 살아 있는 아버지 모습이 그것을 증거한다. 돌아가신 후로 아버지는 내 의식에 자주 출몰하고 있는데 마치 당신이 내 마음속으로 이사해와 거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니 그보다 아버지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 아닌가.나의 얼굴 모습도 점점 아버지와 닮은 꼴이 되어간다. 아버지의 목숨은 단절된 것이 아니다. 자식인 나에게 이어진 것이다.종말은 단절이 아니라 그 속에 시작이 있다는 것 따라서 나의 존재는 단독의 개체가 아니라 혈족이라는 집단적 생명의 한 연결 고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한라산 기슭의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 사촌들과 함께 어렵사리 마련한 그 묘역에는 백부가 먼저 들어와 누워 있었는데, 그 옆으로 한 자리 떼어놓고 두번째 봉분이 생긴 것이다.나는 아버지의 봉분으로 발걸음으로 거리를 재어 장차 내가 묻힐 자리에 서 보았다. 그러자 내 눈길이 자연스럽게 대학 1년자리 큰아들 쪽으로 가는게 아닌가! 나는 야릇한 감회에 훅 하고 웃음을 날렸다.    

묘역은 전망이 좋았다. 산록의 고지대인지라 구름은 흰 명주필처럼 낮게 흐르고 질펀한 푸른 들판과 부드러운 능선의 오름들, 그리고 드넓은 하늘과 바다가 멀리 수평선에서 만나 서로 푸른빛을 다투는 정경이 한눈에 들어왓다.아무리 보아도 물리지 않은 대자연의 풍광에 어느덧 슬픔은 증발해 버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망자의 유택이 이렇게 호사스러울진대 죽음을 슬퍼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육신을 떠난 아버지의 영혼이 흰 만장처럼 가벼이 떠 있는 저 구름 속에 실려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나는 아버지의 죽음뿐만 아니라 나의 죽음도 매우 임의로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길 건너에 높다랗게 자란 삼나무 한 그루가 가족 묘지 앞의 탁 트인 전망을 그르치고 있길래 타고 올아가 나무의 상단부를 톱질로 잘라봤는데, 그 별것 아닌 일이 어찌나 힘들던지 헛구역이 다 나왔다. 과연 나이는 속일 수 없었다. 내 나이 오십,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훨씬 적어졌다는 냉엄한 사실을 나는 그날 온몸으로 수락하기로 한 것 이다.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실천문학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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