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책읽기의 괴로움

문우보인 | 2014.03.06 08:57 | 조회 855

"...책, 별, 여자, 고향은 외로움의 객관적 상관물들이다. 그 외로움이 완전히 보상받을 수는 없다. 그것이 독고준의 삶에서 배운 원칙이다. <그는 외로왔기 때문에 별하늘을 사랑하게 되었고 뒤늦게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졌다> (76p) 독고준의 책 읽기는 여자 사랑하기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책의 부름에 저항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책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부르기 때문에 그곳으로 간다. 책은 여자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고향이다...

 

... 독고준의 책 읽기의 경험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것을 알게 한다. 하나는 책 읽기가 결핍의 충족, 행복에의 약속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우리가 책 읽기와 살아가기가 화해롭게 어우려져 있지 못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책 속의 삶의 길은 삶 속에서 걷기 힘든 길이다...

 

...그렇다고 책을 안 읽을 수는 없다. 거기에는 원형이 있기 때문이다. 원형에 대한 꿈을 상실할 때 삶은 한 비평가의 표현을 빌면 짐승스럽고 더럽고 치사한 어떤 것이 된다. 책 속의 원형들은 이 세계에 무엇이 결핍되어 있으며, 우리는 왜 불행한가 하는 것을 반성케 하는 표지들이다. 그 원형들이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고 있으며, 그 원형들을 생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삶은 최소한도의 초월성을 간직할 수 있다. 그것을 도피주의라고 비난해서는 안된다. 도피란 거짓 화해의 세계로 숨어버리는 것을 뜻하지만, 삶의 원형들을, 지금의 삶 속에서 계속 찾아보려 하는 것은, 도피가 아니라 차라리 싸움이다. 그 싸움을 통해 짐승스럽고 더러운 것들은 조금씩 조금씩 극복된다. 그런 의미에서 책 읽기는 결핍의 충족이며, 행복에의 약속이다...

 

...책 읽기가 고통스러운 것은 책 읽기처럼 세계를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중의 의미를 띠고 있다. 우리는 책을 읽듯 세계를 읽을 수가 없다. 세계라는 책은 너무 크고 복잡하여, 그것의 구조를 곧 선명하게 드러낼 수 없다... 우리는 아니 적어도 아니 적어도 나는 다만 방황할 따름이다. 그 방황을 책상물림의 지적 놀음이라고 단순히 폄하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근본적인 질문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도 최인훈의 회색인에 가깝다. 나는 내 자신이 불행이고 결핍이다."

 

                                                                                                         - 김현 '책읽기의 괴로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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